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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백자 특별전'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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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7-18 19:08 조회 6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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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전후 근대기에 사용한 물고기항아리, 노송누각항아리 등 선보여
      동산박물관, 13일부터 9월말까지 ‘해주백자’ 특별전 열어

  공주의 동산박물관(관장 이정복)이 기획전 ‘조선 목가구, 해주백자를 품다’전을 5월 13일부터 9월 30일까지 개최한다.       
  근대기에 사용한 해주 항아리를 통하여 선인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를 살펴볼 뿐만 아니라 해주백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자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번 전시는, 기획전과 연계하여 소외계층 체험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최근 국내에서는 1900년을 전후로 하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북한 황해도 지역에서 제작된 소위 ‘해주백자’ 또는 ‘해주항아리’로 알려진 독특한 양식의 백자가 관심을 끌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통하여 남한으로 유입된 황해도 해주백자는 해주(海州) 뿐 아니라 인근 봉산(鳳山)지역 등에서 생산된 백자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해주백자는 옹기와 백자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독특한 형태로 옹(甕), 호(壺) 등과 같은 대형 기명(器皿)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청화와 철화로 과감하고 활달한 필치로 다양한 문양이 시문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주백자의 용도는 대형·중형의 옹과 중형 호의 경우 쌀과 같은 곡물을 보관하였으며, 소형 호에는 된장이나 간장 등의 장류, 꿀 등을 임시로 보관하는데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왕실어용 및 궁중용 도자를 생산했던 분원은 1883년에 민영화되고 1910년 이후 일제의 근대적 도자기산업의 진출로 소멸하였다. 조선 도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산업사회로 변화되고 차츰 현대 도자로의 이행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적 산업도자에 치중하였으나 해주백자의 경우에는 근대기에도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해주백자는 전통방식에 의해 당시 조선인의 인식과 소비성향을 반영하여 제작하였고, 공급과 수요가 모두 조선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비록 질적인 측면에서 전통 조선백자와는 큰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백자의 전통을 지키며 성행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자못 크다.
  문양은 주로 청화·철화·녹화 안료로 그렸으며, 문양소재를 보면 어문·화조문·학문·수탉문·접문·운룡문·봉황문·호작문·매조문·초충문·하해문·백로문 등의 동물문, 모란문·국화문·노송문·송죽매문·석류문·율문·파초문 등의 식물문, 노송누각문·기마인물문·산수문·탑문·시 등의 기타 문양이 관찰된다.
  출품유물은 백자청화철화매조초충문호, 백자청화‘봉산군’명호, 백자청화철화노송누각문호, 백자청화철화국화어문대호, 백자청화철화국화파초문호 등 40여점으로 이 유물들을 통하여 선인들의 체취를 직접 느끼면서 해주 항아리의 형태, 문양, 용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정복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하여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생산된 해주 항아리의 기형과 문양을 살피고 한국 도자사에서 갖는 의미와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또한 청화백자 항아리를 비롯한 각종 해주백자를 통하여 조선 후기 황해도 지역의 생활상과 음식문화를 유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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