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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민족유산일지라도 보전하여

보는 이들의 역사의식과 문화의식을 높이는 동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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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박물관뉴스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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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8-11-07 10:49 조회 12,6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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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 
 
사치 스럽지 못한 생활용품 '외면'... 전통문화 계승에 관심 
 
이정복 동산도기박물관장 
 
 
 
 

수집벽
 
필자는 각종 박물관 자료를 20여 년간 수집하여 현재 박물관 2개관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박물관을 목적으로 유물을 모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시절엔 수석회를 창립하여 수석회원들과 남한강, 금강 등지에서 그럴듯한 돌-산수경석, 물형석, 문양석-등을 찾아 돌밭을 뒤졌다. 일 년간 탐석(探石)한 돌중에서 몇 점씩 골라 대학도서관이나 문화원에서 회원 수석전을 매년 개최하였다.

의과대학 고학년과 대학졸업 후의 인턴, 레지던트 시절엔 전혀 시간이 없어 별다른 취미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86년 조그마한 소아과 의원을 개원하면서 다시 수집벽이 되살아나, 토요일과 공휴일을 이용하여 강변 돌밭과 고미술품점을 번갈아들면서 안목을 높이며 수집을 계속하였다.
 
부친
 
우리관은 1997년 3월 1일 개관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개관행사는 하지 않았다. 개관 5일 전에 박물관 설립을 적극 후원하던 부친께서 유명을 달리 하였기 때문이다.
 
생전에 초등학교 교사와 한약업사 일을 하였던 부친은 자식이 하고자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믿고 지원하였다. 현재 박물관에는 유품인 철화분청사기 항아리와 토기 그리고 약장과 약작두 등이 보존되어 있다.

필자는 1960년대 초에 부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데 부친도 같은 학교에 재직하였다. 당시엔 식량부족으로 야산이나 버려 둔 땅을 일구어 논밭으로 만드는 개간작업이 흔하였다. 동네 주민들은 땅을 파다 간혹 출토되는 토기나 기와조각을 우리 집에 갖다 주셨다.
 
부친께선 이들 자료와 함께 자비를 들여 더 구입한 백제 토기 등을 진열장과 함께 학교에 기증하여 어린 학생들의 교육자료로 이용하였다.
 
질그릇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했듯이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특성을 알 수 있는 유물이나 민속자료가 어느 곳에나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직접 수집하여 관찰하고 연구하려는 노력은 아주 미미하다. 수집가들도 화폐가치가 높은 고급 도자기나 서화류를 선호하여, 토기나 질그릇과 같은 일상생활용기는 수천 년간 사용돼 왔으면서도 고급스럽지 못하여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은 약 8,000년 전인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실생활에 필요한 질그릇을 흙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나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토기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후 원삼국과 삼국시대의 토기, 고려의 토기와 청자, 조선의 토기, 질그릇, 분청사기, 백자, 옹기 등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토기․질그릇은 수천 년간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 온 생활문화의 동반자이자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60대 후반의 연령층은 질그릇․질밥통․질화로 등과 같은 질그릇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예로부터 떡은 질시루에 쪄야 제 맛이 나고, 밥은 질밥통에 퍼 두어야 온종일 변치 않으며, 화로는 역시 질화로여야 불이 오래 가고 열감도 은근하다고 하였다.

질그릇 토기 옹기 등을 모두 도기(陶器)라고 부르는데 도기란 붉은 색의 진흙 즉 질로 만든 그릇으로, 가마에서 500도 내지 1,100도 전후로 구워 만든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어 삼국, 고려, 조선을 거쳐 최근까지도 명맥을 이어온 질그릇을 관찰하다 보면 그 소박함이 우리의 심성과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나 1950년대 초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함께 1960년대 경제개발 우선 정책으로 농업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 생활문화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전개되었던 새마을운동과 식생활 개선운동으로 말미암아 남아있던 질그릇마저 플라스틱 양은 스텐 등에 밀려 설 곳을 잃어 버렸다. 필자는 이렇듯 여러 사정으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질그릇이 하나하나 소멸되어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질그릇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였다.
 
 

설립   
 
경향각지의 고미술품점, 민속품점, 벼룩시장 등을 찾아다니며 주로 질그릇․토기․옹기 등을 모았으며 그 외에도 도자기․전적․석조유물․민속자료 등을 수집하였다. 그 많은 수집품을 혼자서만 감상하며 안복(眼福)을 누리기엔 주위 분들께 미안하였으며, 또한 그 양이 방대하여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예 박물관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어떻겠니”라는 부친의 한 말씀에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대로 박물관을 열어 버렸다. 자료를 수집을 시작한지 만 11년 만이었다. 대전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 문화체육부 등록 105호 전문박물관이다.

이렇듯 박물관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기층문화요소의 하나였으면서도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는 도기 즉 토기 질그릇 옹기 등과,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할 자기 즉 청자․분청사기․백자․석간주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 전시 연구 교육함으로써 전통문화를 이해․전승․발전시키고, 시민들의 정서함양과 사회교육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주요 사업으로는 첫째, 기존 소장품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박물관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 연구하여 상설전시하며 둘째, 매년 2~3회 특별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셋째, 연구서적, 소장품 도록, 특별전 도록, 체험교육자료집 등을 출간하며 넷째, 학교 교과과정과 일치하는 주제와 자료를 선정한 체험학습 실시 등을 들 수 있다.

더불어서 우리 박물관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첫째, 생활주변에서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자료일지라도 정성껏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는 역사의식과 문화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기대한다. 둘째, 우리의 전통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들의 친근한 이웃 사랑방 역할을 기대한다. 셋째, 본관의 자료들이 그 전통적 가치를 확립하여 훌륭한 고고자료 역사자료 미술자료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기대한다. 
 
제2관
 
박물관을 개관한 1997년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유물 수집활동은 계속되었다. 매년 두세 번의 기획전을 개최하였으며, 그 동안 발간한 연구서적과 도록 등이 16권에 달하였다.
 
 
필자는 2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작년에는 박물관 발전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초등교육을 전공한 여식(女息)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재 미술관 박물관학 석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 내년에는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할 것이다.

최근 박물관 미술관의 경향은 단순전시보다는 전시교육과 체험학습을 중시하고 있다. 상설전시실 1실과 기획전시실 1실을 운용하고 있으나 전용 체험교육실이 없는 박물관으로서는 나름대로 체험학습을 실시하고 있으나 이 부분이 미진하였다.

박물관을 처음 열고 만 11년 만인 2008년 9월 또 일을 냈다. 부족한 전시공간과 체험교육실, 수장고를 확충하여 제2관을 개관한 것이다.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에 있는 제1관은 토기 질그릇 옹기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대덕구 중리동에 있는 제2관은 청자 분청사기 백자 석간주 등의 도자기와 전적(典籍)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제2관의 체험학습실과 수장고는 여타 박물관에서도 부러워할 만큼 잘 정돈되어 있다.
 사립박물관 뉴스  2008.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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