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간주(石間硃)는 붉은 산화철을 다량 함유한 검붉은 흙으로 석회암(石灰巖)이나 혈암(頁巖) 등이 분해 된 돌 사이에서 나며 고급안료의 재료로 쓰인다. 그리하여 명칭도 철사(鐵砂), 철주(鐵朱), 혈사(血師), 자토(赭土), 대자(代赭), 주토(朱土), 토주(土朱), 대혁석토주(代赫石土朱) 등으로 불린다.
이 산화철 흙을 안료로 하여 백자의 바탕흙 위에서 소성하면 녹이 슨 철색이나 고동색을 내게 되는데 이러한 자기를 석간주라고 한다. 이처럼 석간주는 철분을 다량 함유한 검붉은 흙과 이것을 발색안료로 하고 여기에 회(灰), 약토(藥土), 석회석을 용융제로 하여 만든 유약과 이를 발라 번조한 자기를 통칭한다.
영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음에 옛날에는 ‘석간주’를 사용했는데 듣건대 지금은 ‘回靑畵’를 쓴다 이르니, 이 또한 사치스런 풍조가 아닌가, 따라서 앞으로는 준(樽)외에는 청화의 사용을 일절 금한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석간주는 바로 산화철 안료 즉 철사(鐵砂)를 말한다.
한편 산수화와 인물화의 살빛을 나타낼 때도 채료(彩料)로써 석간주가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단청이나 도자기의 재료로 쓰여지는 석간주는 철을 구워 녹이 슨 산화제이철(Fe2O3, ferric oxide)로 만들거나 황산제이철( ferric sulfate) 즉 녹반(綠礬)을 구워 만드는데 농적색, 대황적색, 담적색 등 다양한 색상을 띤다.
이와 같이 천연산 산화철을 함유한 흙이나 산화철을 배합한 색유약을 철유(鐵釉)라고 하는데 석간주유, 적철유(赤鐵釉), 철사유(鐵砂釉), 흑유, 천목유(天木釉), 이라보유(伊羅保釉)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조선후기 전국 각지에서 제작된 석간주자기의 주된 기형은 항아리와 병과 같은 생활용기였다. 소지(素地)는 백자토를 사용하였으나, 기벽이 두꺼워서 무거운 편이며 그릇의 밑과 굽바닥은 거칠다. 주된 수요층은 일반 서민들이어서 질보다는 양 위주로 생산하였기 때문에 품질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거친 듯 숙달된 솜씨는 소박하면서도 신선한 감마저 든다.
석간주는 대체로 백자 그릇 꼴을 닮았는데 특히 바닥 굽은 18세기~20세기에 제작된 백자의 굽처리와 같다. 시기가 내려올수록 몸체가 풍만해지고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도 역시 백자와 양상이 비슷하다. 가장 큰 특징은 다각(多角)항아리가 많고 각면(角面)을 깎는 특이한 조형감각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