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발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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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민족유산일지라도 보전하여

보는 이들의 역사의식과 문화의식을 높이는 동산박물관


조선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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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발(沙鉢)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는 용기 즉 식기의 총체적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사발보다 큰 형태로 국이나 면을 담는 그릇인 대접(大接)이 있는데 이는 밥사발과 한 벌이 되는 식기의 하나이다. 밥을 다 먹은 뒤에 대접에 숭늉을 담아 마시기도 한다.

      모양이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입지름이 크고 바닥은 좁으며 그 사이는 곱게 곡선으로 흐른다. 대접 모양의 그릇은 빗살무늬토기시대의 발형토기(鉢型土器)로부터 비롯된다. 대접의 형태는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변화 없이 유사한 모양을 보인다.

      - 분청사기사발
      분청사기(粉靑沙器)는 조선시대 전기 약200년간 사용되던 도자기이다. 분청사기란 1930년대 미술사학자인 고유섭(高裕燮)선생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미시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로 명명한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줄임말이다. 회청색의 태토에 백토분을 발라 장식한 사기란 뜻이다. 분청사기는 기면에 새기거나 도장을 찍거나 긁어내거나 그리거나 하는 등의 여러 기법을 사용해 무늬를 나타낸다. 이러한 시문수법(施文手法)에 따라 상감분청사기, 인화분청사기, 조화․박지분청사기, 철화분청사기, 귀얄분청사기, 덤벙분청사기 등의 종류가 있다.
      상감분청사기(象嵌粉靑沙器)는 무늬 부분을 파내 홈을 만든 백토나 검은 색 흙으로 메꾸고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다.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대체적으로 15세기 전반 경까지 사용하던 기법이다.
      인화분청사기(印花粉靑沙器)는 문양을 하나하나 파내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이미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찍어 오목하게 한 뒤에 백토로 메우고 유약을 발라 구은 것이다. 작은 국화꽃 모양, 작은 동그라미를 찍은 듯한 승렴문(繩簾紋), 우점문(雨點紋) 등이 대표적인 문양이다. 드물게 내섬(內贍), 장흥고(長興庫) 등과 같은 관청의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인화분청사기를 미시마(三島)라고 부른다.
      귀얄분청사기는 올이 굵은 풀비 즉 귀얄을 사용해 기면에 단순하게 백토를 발라 장식한 것이다. 귀얄에 백토를 찍어 힘차게 칠했기 때문에 백토분장 사이에 귀얄 자국이 나타나 생동감 넘치는 효과를 나타낸다.
      덤벙분청사기는 그릇을 백토물에 덤벙 담가서 분장한 것이다. 백토가 두껍게 묻어 있고 차분해 보여 언뜻 보면 백자 같은 느낌이 난다. 대접이나 접시 같은 경우 백토물에 덤벙 담글 때 손으로 굽을 잡기 때문에 굽 근처에는 백토가 묻지 않고 백토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것이 있어 재미있는 추상성을 보이기도 한다.

      - 흑유사발
      흑유자기는 산화철 성분이 많이 포함된 유약을 두껍게 발라 흑색 또는 흑갈색을 내는 자기를 말한다. 출품된 사발은 15~1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흑유자기는 유약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태토가 자기질인데도 푸석푸석한 느낌을 주며 흑유에서는 탁한 백색기운이 감돌기도 한다.
      - 백자사발
      분청사기는 임진왜란 전후에 소멸되었으나, 백자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백자는 그릇표면에 나타내는 장식기법에 따라 순백자, 상감백자, 철화백자, 청화백자, 진사백자 등으로 나뉜다.
      순백자는 백자를 만드는 원료인 태토와 유약 이외의 다른 물질은 사용하지 않는 순순한 백색자기를 말한다. 그릇표면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다. 백색도 회백색, 유백색, 설백색, 청백색 등의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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